안녕하십니까. 울산 사는 신아무개입니다.



가입한지 몇년은 되었고 한번씩은 글도 남기고 했는데...몇년만에 접속한건지 가물가물하네요. 녹화하셨던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왠지 모르게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던 저였고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99년에 부산 사직구장에 갔던 것을 계기로 야구팬이 되었던 저는 자연스레 찬호형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1999년이 힘든 시즌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당시 집에서 유선채널이 잡히지 않아 라디오도 듣거나 일간 스포츠 신문 등을 통해 소식을 접했습니다. 한 번씩은 유선 사업 하시던 친척 어른의 회사에 가서 아침부터 TV를 보며 응원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이사를 가게 되었고 집에 유선채널이 잡히게 되어...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2008년에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돌아오셨을때...지토와의 선발 맞대결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그해부터 제게 힘든 일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간 한결같이 건강하시고 당당하시던 아버지가 혈관이 막혀...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조금만 더 늦었어도 고비였다고 했스니다가뜩이나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술 때문에 얼굴에 알레르기 같은 것이 나고 살도 쪘던 저에게...이 일은 충격이었고 2008년은 정말이지 힘든 한해였습니다. 아니, 짧은 인생이지만 인생 최악의 1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좋아했고 그런만큼 지방대에 진학했지만 전공을 영문과로 택했던 제가...오죽하면 영어조차도 재미없고 자신감이 없어졌을 정도였습니다. 술을 다른 친구들보다 적게 마셨는데도 지방간과 고혈압때문에 군 복무 조차도 현역이 아닌 공익으로 끝내야 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춘기때 반항하지 않고 참았던 것이...쌓이고 쌓여서 급기야 그해에 우울증으로 악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찬호형님의 투구를 보며 정말이지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2009년 포스트시즌에서 캠프를

삼진으로 잡아내던 모습은 지금도 한 번씩 찾아보곤 할 정도입니다. 우울증 때문에 군 면제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치료를 거부,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 어렵사리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2010년에도 저는 형님의 경기 소식을 꾸준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릭스에서 뛰셨던 2011년에는...이제 좀 좋아지나 싶었습니다. 부대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고, 할 일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있었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연초에 지금도 도대체 뭣 때문에 발병한 것인지 모르는 위 궤양으로 인한 빈혈로 입원한 후 몇 달 동안 약을 복용하고 진단도 받은 끝에 깔끔하게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2011년 여름...왼쪽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씩 걷다가 눈 앞에 순간적으로 노래졌습니다. 체육대회때 농구 경기를 한 판 하고 근무를 다녀왔는데 마지막에 다리가 너무 무거워져서 힘들었습니다. 평소에는 가뿐했던 근무 시간이 얼마나 힘들게 느껴지던지...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만성 허리디스크...이미 디스크가 신경을 마비시킬 지경까지 누르고 있기 때문에 수술이 불가피하며, 수술하고 나면 통증은 사라지겠지만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소식이었습니다. 빈혈에서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제가 걱정된 나머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왔던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기를 드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르지만...얘기를 안 할 수 없었기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수술 시설을 갖춘 병원이 없었기 때문에(지금도 없는지는 모릅니다.) 울산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고 병가를 쓰기로 했습니다. 수술 전날에 입원 준비하면서 MRI를 한번 더 살펴봤는데 세상에나...의사 선생님이 의가사 제대를 권유하시더군요. 하지만 어렵사리 현역 복무의 기회를 잡았던 저는...당시 상병이었기 때문에 그 권유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어떻게든 전역은 해야겠다는 의지가...힘든 일들을 몇년 간 겪다보니 어느샌가 지쳐있던 제게...그래도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힘들었습니다. 지쳐있는 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물리치료를 받고 스트레칭을 하며 재활에 임했습니다. 다행히도 전역 전에는 근무도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몸상태가 좋아져서...무사히 전역했습니다. 2012년 07월 21일 토요일...지금도 전역증을 받았던 전날 밤의 기쁨이 생생합니다.



2012년이면...맞습니다. 찬호형님이 한화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시던 때였죠.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복학을 앞두고 있는 저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학점은 3.29였고 이미 2학년까지 마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복수전공이나 교직을 했던 것도 아니었고 영어를 잘한다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2008년에 확 쪘던 살은 그때에도 여전했고, 이것은 물론 제 잘못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울증하고도 싸워야 했죠.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뭐부터 해야할지...생각해보니 2008년 이후 우울증도 우울증이지만 몸이 멀쩡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살을 뺀 적은 있었지만 결심한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고 좀 빼고 나면 안주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쪘습니다. 이런 예전의 모습을 뒤돌아 본 후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2012년 10월 28일이었습니다. 먹는 것도 조절하기로 했고 당시 80kg였기 때문에 10kg를 복학 이전까지 뺀다는 목표를 잡고 아침에 운동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조화였을까요...제가 놀랄 정도로 먹고 싶다는 유혹 등을 잘 버텨냈고 살이 잘 빠지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고 운동하러 나섰습니다. 그렇게 2013년이 밝았고 01월 12일...저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정말이지 기뻤고 이후에도 계속 운동해서...3kg를 더 뺀 상태로 복학했습니다. 거기에 2012년 여름부터 시작했던 오바마 연설 공부도 정말이지 힘들었는데 계속 하다보니...어느샌가 제 영어가 해외에 다녀온 친구들보다도 못한 수준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도 힘든 일이 있었고 이제서야 조금씩 극복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어오며 깨달은 것은 사람은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할 수 있고,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서 찬호형의 선수 시절을 뒤돌아보았습니다. FA 대박, 하지만 부상으로 인한 부진, 기나긴 부진의 터널, 그리고 재기...물론 제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SKY에 진학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지방대생일 뿐입니다. 하지만...역경을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왠지 모를 공통점을 느꼈습니다. 때마침 찬호형님이 고생하셨던 이유도 허리부상때문이었고...저 역시 2011년 이후에는 허리때문에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일까요...이젠 단순히 야구팬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찬호형님의 삶에 대해 공감하는 부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일까요...이젠 형님을 보다보면 뭔가 모를 애틋한 감정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래서일까요...이제는 만나서...사람 대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정말이지 한번쯤은 만나뵙고 싶어집니다. 그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지난해의 은퇴영상을 보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정말로 은퇴한다고 생각하니 이젠 잘 울지 않는 제가 별안간 눈물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찬호라는 한 명의 사람을, 야구선수를 보면서, 야구팬이라는 범주를 초월한 공감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방송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요즘 층간소음으로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 윗집아이가 이 시간에 목이 터져라 울고 있습니다...어휴...아무튼 글이 참 길어졌네요. 읽기에 불편하신 점, 미리 양해구합니다. 방송 재미있게 보시길...^^